승강기 안전, 이제 ‘기계장치’만 검사해서는 안 된다

뉴스 Profile elmoa 2026-09-04 08:16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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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유럽은 2027년부터 새로운 기계규정 적용…소프트웨어와 외부 연결까지 안전의 영역으로

한국 승강기업계도 ‘기계적 안전’ 이후를 준비할 때

[엘모아=편집부]  승강기 안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과속조절기와 추락방지안전장치, 브레이크, 도어록, 와이어로프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계장치가 대부분일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승강기 안전제도의 중심도 이러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승강기가 점점 하나의 거대한 전자·소프트웨어 시스템으로 변하면서 유럽의 안전기준도 조금씩 다른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2027년 1월 20일부터 기존 기계지침(Machinery Directive 2006/42/EC)을 새로운 기계규정(Machinery Regulation EU 2023/1230)으로 대체한다. 중요한 점은 승강기 자체를 규율하는 기존 승강기 지침 2014/33/EU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승강기는 앞으로도 승강기 지침의 적용을 받지만, 해당 지침에서 다루지 않는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 새로운 기계규정의 필수 보건·안전 요구사항이 승강기와 승강기 안전부품에도 적용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이 변화가 승강기 및 안전부품의 시장 출시와 적합성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공식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 변화가 의미 있는 이유는 승강기의 안전을 바라보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발표된 ISO 8100-1:2026은 승객용 및 화물승객용 승강기의 설계·설치 안전기준을 다루는 국제표준으로, 기존 2019년판을 대체했다. ISO는 해당 표준을 2026년 3월 발행했으며, 유럽에서도 EN ISO 8100-1:2026이 뒤이어 발표됐다. 다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EN ISO 8100-1:2026은 아직 승강기 지침에 따른 EU 관보의 조화표준으로 인용되기 전 단계다.

 

안전의 대상이 ‘부품’에서 ‘시스템’으로 넓어진다

새 기준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소프트웨어다. 유럽승강기협회(ELA)가 새로운 기계규정과 EN ISO 8100-1:2026의 관계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외부 장비와 연결될 수 있는 승강기 및 승강기 부품에 대한 요구사항이 등장하고, 안전기능에 관계된 소프트웨어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가 교체 가능한 경우에는 어떤 버전이 적용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도 제공돼야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보안 이벤트 기록을 최소 5년 동안 보관하도록 한 내용이다. 안전기능과 관련된 프로그램의 파라미터 설정 기록과 이를 검증하는 절차도 문서화 대상에 포함된다. 승강기 안전을 단순히 “브레이크가 작동하느냐”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그 브레이크를 제어하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느냐”까지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변화다. 과거의 엘리베이터는 기계장치에 전기제어가 붙어 있는 설비에 가까웠지만 지금의 엘리베이터는 상황이 다르다. 인버터와 각종 센서, 전자식 안전장치, 원격 모니터링, 군관리 시스템, 목적층 제어, 스마트빌딩 시스템과의 연동이 일상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AI를 이용한 고장예측과 클라우드 기반 유지관리까지 등장한다. 승강기가 건물 외부의 시스템과 연결되는 순간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원인 역시 기계적인 고장에만 머물 수 없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승강기 관련 법규를 설명하면서 별도로 Cyber Resilience Act, 즉 사이버 복원력법 역시 승강기에 적용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한국 승강기는 과연 어디까지 검사하고 있는가

여기에서 국내 승강기 산업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승강기 검사와 인증 제도가 상당히 촘촘한 국가에 속한다. 안전부품 인증부터 완성검사, 정기검사, 자체점검까지 여러 단계의 관리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중요한 것은 검사의 횟수가 많은가 적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검사할 것인가일 수 있다.

기계장치가 정상인지 확인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제어반 내부의 프로그램이 변경됐다면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안전기능과 관련된 파라미터가 언제 누구에 의해 바뀌었는지 기록할 것인지, 외부 통신장치가 승강기 제어시스템과 연결된다면 그 접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와 같은 문제도 점점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앞으로 원격점검과 예측정비가 확대된다면 이 문제는 더욱 커진다. 승강기가 유지관리회사 서버로 실시간 데이터를 전송하고 외부에서 상태를 분석하는 시대에는 ‘연결’ 자체가 새로운 관리 대상이 된다. 연결을 통해 고장을 미리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반대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연결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위험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기준이 많아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기준인가’

그렇다고 유럽에서 새로운 규정이 등장했다고 한국도 무조건 똑같은 규제를 추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럽의 CE 체계와 국내 KC 및 승강기 안전관리제도는 별도의 법체계이며, 유럽 표준이 바뀐다고 국내 기준이 자동으로 변경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규제의 숫자가 아니라 규제가 바라보는 방향이다.

한국의 승강기 안전정책은 오랫동안 사고를 줄이기 위해 검사와 인증, 점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제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승강기가 기계장치에서 디지털 설비로 바뀌고 있다면 검사제도 역시 그 변화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 오래된 체크리스트에 검사 항목 몇 개를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승강기라는 설비 자체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먼저 바라봐야 한다.

특히 유럽으로 승강기와 안전부품을 수출하는 국내 제조업체라면 이번 변화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제품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관리, 기술문서, 외부 연결과 관련된 요구사항까지 앞으로 적합성 평가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럽이 새로운 규정을 적용하기 시작하는 2027년은 불과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승강기 산업에서 ‘안전’이라는 단어는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안전을 지키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에는 끊어지는 로프와 고장 나는 브레이크를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면, 앞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외부 연결까지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른다.

승강기는 이미 변하고 있다. 이제 안전기준이 그 속도를 따라갈 차례다.


엘모아 한 줄 요약

유럽 승강기 안전기준은 기계장치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와 외부 연결까지 관리하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다. 한국 역시 ‘검사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보다 ‘앞으로 무엇을 검사해야 하느냐’를 고민할 시점이다.

업계 체크포인트

  • EU 새로운 기계규정은 2027년 1월 20일부터 적용된다.
  • EN ISO 8100-1:2026에서는 안전 관련 소프트웨어 식별과 보안 이벤트 기록 등 새로운 요구사항이 주목된다.
  • 국내 KC 제도가 자동으로 변경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 수출업체와 안전부품 제조사는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 원격관리·IoT·AI 승강기가 확대될수록 소프트웨어와 통신보안이 새로운 안전관리 분야로 떠오를 전망이다.

엘모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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