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승강기인데 왜 정비업체를 마음대로 못 바꾸나…EU가 꺼낸 ‘디지털 잠금’ 문제

뉴스 Profile elmoa 2026-09-02 07:07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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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엘모아=편집부] 아파트가 승강기를 구입했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비용을 지불했고, 승강기는 분명 그 건물의 자산이 됐다. 그런데 몇 년 뒤 유지관리업체를 바꾸려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

새로운 업체가 제어기에 접근할 수 없다. 고장을 진단하려면 제조사 전용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일부 설정값을 확인하려면 비밀번호나 전용 장비가 필요하다. 특정 전자부품은 제조사를 통하지 않으면 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승강기는 정말 건물주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최근 승강기 산업을 평가하면서 바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꺼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월 23일 발표한 「승강기지침 2014/33/EU 평가」에서 현재 승강기 제도가 안전과 단일시장이라는 기본적인 목적은 대체로 잘 달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큰 약점 가운데 하나로 유지관리시장의 경쟁 문제를 지목했다.

문제의 핵심은 승강기 자체에 접근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승강기를 수리하고 유지관리하고 현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와 매뉴얼, 전자부품, 그리고 제어시스템에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느냐다.

EU 집행위원회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문제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고 평가했다. 과거에는 기계부품과 회로도를 확보하면 어느 정도 유지관리가 가능했지만, 오늘날 승강기는 제어반과 소프트웨어, 전자식 안전장치가 결합된 디지털 장비가 됐다. 일부 시스템에서는 제어장치와 같은 전자부분에 대한 접근을 디지털 방식으로 잠글 수 있게 됐고, 이것이 다른 유지관리업체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건물주에게 문제가 돌아온다.

현재 업체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유지관리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해 다른 회사로 바꾸고 싶어도, 새로운 업체가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장비·전자부품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실질적인 선택권은 크게 줄어든다.

EU 집행위원회 역시 제한된 도구와 정보, 전자부품 접근 때문에 승강기 소유자가 유지관리회사를 변경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직접 지적했다.

승강기라는 기계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 기계를 유지관리하는 데 필요한 ‘열쇠’는 다른 곳에 있는 셈이다.

 

승강기 산업도 ‘수리할 권리’ 문제를 만났다

사실 이런 문제는 승강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와 스마트폰, 농기계, 가전제품에서도 오래전부터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제품을 구입한 사람이 고장이 났을 때 제조사 서비스센터에서만 수리해야 하는지, 아니면 독립수리업체가 부품과 진단장비를 이용해 수리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놓고 벌어진 이른바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 논쟁이다.

승강기도 점점 같은 문제를 만나고 있다.

오히려 승강기는 일반 소비재보다 문제가 더 민감하다.

스마트폰은 제조사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 제품으로 교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승강기는 한번 설치하면 20년 이상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설치비용도 크고 건축물과 구조적으로 결합돼 있어 제조사를 바꾸고 싶다고 승강기를 통째로 뜯어낼 수도 없다.

결국 처음 어떤 시스템을 선택했는지가 이후 수십 년간 유지관리시장까지 결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제조사 입장도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승강기는 사람의 생명과 직접 연결되는 안전설비다.

아무 업체나 제어프로그램에 접근해 설정값을 변경하도록 허용할 경우 오히려 사고위험이 커질 수 있다. 제조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와 기술자료 역시 지식재산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특히 브레이크 제어와 도어 안전회로, UCMP와 같은 안전기능에 관계된 설정값을 잘못 변경한다면 단순한 제품고장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해답이 “모든 프로그램과 비밀번호를 누구에게나 공개하라”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안전을 이유로 필요한 접근을 통제하는 것과, 유지관리시장의 경쟁을 막을 정도로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이냐다.

EU가 바로 그 경계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EU 승강기지침에는 애초에 빈틈이 있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현재 EU 승강기지침이 승강기 유지관리와 현대화 자체를 직접 규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승강기지침이 신규 승강기와 안전부품의 시장출시·안전 등을 다루지만 일반적인 유지관리와 현대화는 각 회원국의 책임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승강기가 ‘중대한 변경’을 받은 경우에는 다시 승강기지침과 관련될 수 있다.

이 구조 때문에 신규 승강기를 설치할 때 안전기준은 유럽 전역에서 비교적 통일돼 있지만, 설치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유지관리시장에서는 회원국별 제도와 시장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승강기가 기계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면서 이 빈틈이 더 커진 것이다.

EU의 별도 평가보고서에서도 중소 승강기업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오랫동안 제조사 고유 시스템과 전용 도구, 불충분한 기술정보 제공, 기계실 접근 제한 등이 독립 유지관리업체의 시장 참여를 어렵게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보고서는 앞으로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봤다.

기존 승강기지침이 승강기의 전자부품에 대한 접근권을 구체적으로 규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설치업체가 전자시스템 접근을 잠그면 다른 업체가 유지관리를 인수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EU 집행위원회는 이번 평가 이후 ‘수리·유지관리·현대화를 위한 승강기 운영시스템 접근성’을 앞으로 더 심층적으로 검토할 네 가지 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나머지는 장애인 접근성, 독립적으로 CE 표시해야 할 안전부품 범위, 에너지효율 문제다.

즉 이 문제는 단순한 업계 불만 수준을 넘어 향후 EU 승강기제도 개편의 공식 의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 법을 보면 의외의 조항이 있다

여기에서 한국을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우리나라 「승강기 안전관리법」 제8조는 제조·수입업자의 사후관리 의무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제조·수입업자는 유지관리용 부품을 제공해야 할 뿐 아니라 승강기의 결함 점검·정비·검사에 필요한 장비 또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야 한다.

더 중요한 문구가 있다.

법에서는 이 소프트웨어에 ‘비밀번호 등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까지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지관리업체가 요청하는 경우 기술지도와 교육, 유지관리 매뉴얼 등 관련 자료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관리주체나 등록 유지관리업체 등이 부품 또는 장비·소프트웨어 제공을 요청하면 제조·수입업자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2일 이내에 요청에 따라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시·도지사가 이행을 명할 수도 있다.

시행령은 한 걸음 더 나간다.

동일한 형식의 유지관리 부품과 장비·소프트웨어를 최종 판매한 날부터 10년 이상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슷한 대체부품이나 장비를 제공할 수 있는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된다.

법 문구만 놓고 보면 한국은 EU가 지금 문제 삼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미 상당히 직접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은 셈이다.

승강기를 판매한 뒤 제조사가 기술과 부품을 독점해 다른 유지관리업체가 사실상 손을 대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을까

그렇다고 여기에서 “한국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 너무 단순하다.

법에 접근권이 있다는 것과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정보와 장비를 충분한 조건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상 제공’이 가능한 경우 가격은 어느 수준까지 적정한가.

전용 진단장비 사용방법에 대한 교육은 충분히 제공되는가.

특정 PCB나 제어장치가 단종됐을 때 대체품은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공급되는가.

프로그램 접속권을 제공했더라도 중요한 설정영역 일부가 제한돼 있다면 이를 ‘접근권 제공’이라고 볼 수 있는가.

반대로 모든 설정권한을 독립 유지관리업체에 제공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안전책임과 제조사의 지식재산권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바로 이런 문제부터는 법 한 줄로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접근권을 보장하되 안전과 책임을 어떻게 함께 관리할 것인지다.

 

유지관리 경쟁이 막히면 결국 비용은 건물주가 낸다

이 문제를 승강기업체끼리의 시장다툼 정도로 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가장 큰 이해관계자는 결국 승강기 소유자와 이용자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유지관리업체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보자.

기존 업체의 고장 대응이 느리거나 유지관리비가 높아 다른 업체의 견적을 받아봤다.

그런데 새로운 업체가 말한다.

“이 제어반은 제조사 전용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이 부품은 제조사에서만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고장코드를 확인하려면 전용 장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가격경쟁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다.

다른 유지관리업체가 존재하더라도 실제로 정비할 수 없다면 선택권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는 유지관리 가격과 부품가격, 현대화 비용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

EU가 이 문제를 ‘안전’이 아니라 유지관리시장의 경쟁 문제로 별도로 지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대로 무조건 개방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럼 모든 제조사가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누구나 승강기를 수리할 수 있도록 하면 될까.

그것 역시 답은 아니다.

승강기는 자동차나 스마트폰보다 훨씬 높은 안전책임이 요구되는 설비다.

제어변수를 잘못 변경한 기술자가 사고를 발생시켰다면 제조사의 책임인지, 유지관리업체의 책임인지 명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안전 관련 프로그램의 변경 이력도 남아야 한다.

누가 언제 어떤 설정값을 변경했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하고, 중요한 안전변수에는 자격을 가진 기술자만 접근하도록 할 필요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완전 개방’보다 관리되는 개방에 가깝다.

등록된 유지관리업체에는 필요한 기술정보와 진단장비, 부품 접근권을 보장하되 안전 관련 설정 변경은 기록하고 책임주체를 명확히 하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라면 제조사의 기술과 안전성도 보호하면서 건물주의 유지관리업체 선택권도 확보할 수 있다.

 

승강기의 소유권은 어디까지인가

스마트 승강기가 늘어날수록 이 질문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과거 승강기는 철과 모터, 로프와 릴레이로 움직였다.

부품을 교체하고 회로도를 읽을 수 있는 기술자가 있으면 상당수의 유지관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승강기의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이 소프트웨어와 데이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원격진단과 AI 고장예측, 클라우드 연결, 전자식 안전장치가 늘어나면 물리적인 승강기를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설비를 완전히 통제한다고 말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이 이미 겪고 있는 문제다.

차량을 구입했지만 소프트웨어는 제조사의 서버와 연결되고, 특정 기능은 구독서비스로 제공되며, 고장진단에는 전용장비가 필요하다.

승강기 역시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앞으로 건물주는 승강기라는 기계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수십 년짜리 기술생태계에 가입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승강기를 처음 선택할 때도 구매가격과 디자인, 운행성능만 볼 것이 아니라 유지관리 개방성까지 평가해야 한다.

부품은 몇 년 동안 공급되는가.

독립 유지관리업체가 수리할 수 있는가.

전용 진단장비는 제공되는가.

소프트웨어와 고장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가.

제조사가 시장에서 철수해도 승강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앞으로는 승강기 발주조건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은 법을 만들어 놨다…이제 중요한 것은 실제 작동 여부다

이번 EU 평가를 보면 역설적으로 한국 제도의 장점도 보인다.

우리 법은 이미 제조·수입업자가 부품뿐 아니라 진단장비와 소프트웨어, 비밀번호 등 접근권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시한다. 유지관리 관련 자료와 교육 제공 의무도 있다.

EU가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하려는 문제를 한국은 법 조문에서 상당 부분 먼저 다루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법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도 안 된다.

현장에서 실제로 장비와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는지, 가격과 조건이 합리적인지, 중소 유지관리업체가 제조사와 관계없이 필요한 정비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좋은 법도 종이 위의 권리에 그칠 수 있다.

승강기를 구매했다면 그 승강기는 건물주의 것이다.

당연히 제조사의 기술과 지식재산은 보호돼야 한다.

안전과 직결되는 프로그램 역시 아무에게나 공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전이라는 이유가 소비자의 선택권과 정당한 유지관리 경쟁까지 막는 ‘디지털 자물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스마트 승강기가 늘어날수록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더욱 단순해질 것이다.

“승강기를 소유한다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 소유한다는 뜻인가.”

철과 모터만 내 것이고 그 안의 프로그램과 진단권한은 영원히 제조사의 것이라면, 승강기 유지관리시장의 경쟁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EU가 지금 이 문제를 다시 꺼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엘모아 한 줄 요약

EU 집행위원회는 승강기 제어시스템의 디지털 잠금과 전용도구·기술정보 접근 제한이 건물주의 유지관리업체 선택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이미 법으로 부품뿐 아니라 진단장비·소프트웨어·비밀번호 접근권 제공까지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그 권리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업계 체크포인트

  • EU는 유지관리시장 경쟁 문제를 현행 승강기지침의 주요 약점으로 평가했다.
  • 앞으로 EU는 수리·유지관리·현대화를 위한 승강기 운영시스템 접근권을 별도로 심층 검토한다.
  • 한국 승강기안전관리법은 제조·수입업자에게 부품·장비·소프트웨어 및 비밀번호 접근권 제공 의무를 두고 있다.
  • 핵심은 ‘완전 개방’이 아니라 안전을 보장하면서 유지관리 경쟁과 소유자의 선택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엘모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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