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지진 나면 엘리베이터는 어디서 멈출까…지진관제운전과 내진 기준, 한·미·일은 어떻게 다른가

뉴스 Profile elmoa • 2026-11-06 14:43 •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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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감지 후 가까운 층에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승객이 내리는 모습기사의 이해를 돕기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엘모아=편집부] 지진이 나면 엘리베이터는 가장 먼저 멈춰야 하는 설비이면서, 멈추는 방식에 따라 갇힘 사고가 날 수 있는 설비이기도 하다. 층 사이에서 그냥 멈추면 승객이 갇히고, 흔들리는 승강로에서 계속 달리면 균형추 이탈이나 로프 엉킴 같은 2차 피해로 번진다. 그래서 각국 기준은 지진을 감지하면 카를 가장 가까운 층에 세우고 문을 열어 승객을 내보내는 '지진관제운전'에 초점을 맞춰 왔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은 지난달 20일 규모 5.0 지진과 대정전이 겹친 상황을 가정해 다수 건물에서 승강기 갇힘이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재난 모의훈련을 했다. 국내에서도 지진을 승강기 안전관리의 현실적인 변수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엘모아는 지진관제운전의 원리와 국내외 기준, 과거 지진 피해 데이터를 따라가 업계가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 정리했다.

 

1. 지진관제운전은 어떻게 작동하나

지진관제운전의 핵심은 지진감지기다. 지진파는 속도가 빠르고 진동이 약한 P파(초기 미동)가 먼저 도달하고, 흔들림이 큰 S파(주요동)가 뒤따른다. 감지기가 P파를 먼저 잡으면 큰 흔들림이 오기 전에 카를 가까운 층에 세울 시간을 벌 수 있다.

일반적인 동작 순서는 지진 감지, 주행 방향의 최인접층 정지, 문 열림과 승객 하차, 운행 정지 대기 순이다. 감지기는 보통 기계실이나 승강로 상부에 설치하고, 한 대의 감지 신호를 같은 그룹의 모든 승강기에 동시에 보내도록 구성한다.

중요한 점은 '멈춘 뒤'다. 지진 뒤에는 가이드레일 변형, 균형추 이탈, 로프 걸림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바로 운행을 재개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설계는 기술자가 점검하고 리셋할 때까지 운행을 막도록 되어 있다.

 

2. 지진이 엘리베이터에 남기는 피해 유형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비구조요소 내진 지침(FEMA E-74)은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흔한 지진 피해로 균형추 이탈을 꼽는다. 균형추는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무거운 부품으로, 보통 정격하중의 절반을 실은 카 무게에 맞춘다.

엘리베이터는 평소 저층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지진이 나면 균형추는 흔들림이 가장 큰 건물 상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레일에서 빠진 균형추는 승강로 안에서 흔들리며 레일과 브래킷을 손상시키고, 이 상태로 운행하면 카와 충돌할 수도 있다. 충돌이 심하면 균형추 블록이 빠져 피트나 카 위로 떨어진다.

이 밖에 레일 굽힘, 레일 브래킷 변형, 권상기·제어반 전도, 메인로프와 이동케이블이 승강로 기기에 걸리는 피해도 대표적이다. 굽은 레일은 교체에 며칠이 걸릴 수 있어 복구 기간이 길어진다.

 

3. 일본: 큰 지진 때마다 기준을 고쳐 왔다

일본은 지진 피해를 겪을 때마다 승강기 내진 기준을 고쳐 온 대표 사례다. 히타치빌딩시스템(Hitachi Building Systems)이 2021년 히타치리뷰(Hitachi Review)에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1981년 내진 설계·시공 지침에 가이드레일, 기계실 기기, 로프 이탈 방지, 지진관제운전 등이 처음 표준화됐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Great Hanshin-Awaji Earthquake)에서 균형추 블록 낙하와 기기 전도, 로프 걸림이 잇따르자 1998년 보강 기준이 추가됐다. 2005년 지바현 북서부 지진(Northwestern Chiba earthquake) 이후에는 2009년 지침에서 P파 관제운전 설치와 갇힘 승객 구출 방법이 규정됐다.

같은 2009년에는 건축기준법 시행령이 개정돼 정전 때 비상발전기 전원으로 움직이는 관제운전이나 배터리로 가까운 층에 착상하는 장치를 갖추도록 했다. 지진에 정전이 겹쳐 층 사이에서 멈추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다.

 

4. 동일본대지진이 보여준 기준의 효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Great East Japan Earthquake)은 기준 강화의 효과를 수치로 보여줬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이 지진으로 엘리베이터 8,921대(피해율 2.43%)와 에스컬레이터 1,598대(3.9%)가 피해를 입었다.

다만 2009년 기준을 적용한 설비의 피해율은 엘리베이터 1.13%, 에스컬레이터 2.0%로 낮았다. 기준을 적용한 설비의 피해율이 절반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균형추 블록 낙하 49건, 에스컬레이터 어긋남 255건, 에스컬레이터 탈락·추락 4건 같은 중대 피해가 나왔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2013년 국토교통성(MLIT) 고시로 에스컬레이터 탈락 방지와 균형추 이탈 방지 구조 기준을 정했고, 2014년 내진 설계·시공 지침을 다시 고쳤다.

 

5. 새 과제, 장주기 지진동과 갇힘

최근 일본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장주기 지진동이다. 장주기 지진동은 멀리까지 약해지지 않고 전달되는 느린 흔들림으로, 가속도가 작으면 기존 P파·S파 감지기가 잡지 못한다. 그런데 초고층 건물은 이 주기와 공진해 크게 흔들리고, 메인로프와 이동케이블 같은 긴 부품이 출렁이며 승강로 기기에 걸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제조사들은 건물 상부의 흔들림으로 로프 진폭을 예측해, 진폭에 따라 저속 운행하거나 운행을 멈추는 제어 기술을 내놓고 있다. 진도 5약 이상에서 최인접층에 정지한 뒤 승객이 내리면 스스로 진단 운전을 하고, 이상이 없으면 임시 복구하는 기능도 나왔다. 다만 완전 복구는 기술자 점검을 거쳐야 한다.

갇힘은 여전히 남은 과제다. 엘리베이터월드(Elevator World)가 마이니치신문(Mainichi) 보도를 인용한 데 따르면 2018년 오사카 북부 지진 때 11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엘리베이터 약 6만3,000대가 멈췄고, 5개 지역 346대에서 승객이 갇혔다. 관제운전으로 대부분 층에 멈춰도, 동시에 수만 대가 서면 점검·복구 인력이 부족해진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6. 미국: 속도 기준으로 지진 스위치 의무화

미국은 승강기 안전규격 ASME A17.1의 내진 조항(Section 8.4)과 건축 하중 기준 ASCE/SEI 7을 함께 적용한다. FEMA E-74에 따르면 엘리베이터는 기계 부품으로 분류돼 층간 변위와 가속도에 모두 민감한 설비로 다뤄지고, ASME A17.1 내진 조항대로 설계하면 ASCE/SEI 7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본다.

같은 지침은 분속 150피트(약 45m/min)를 넘는 엘리베이터에 지진 흔들림으로 작동하는 지진 스위치(seismic switch)를 달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손상됐을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지진 뒤 그대로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기존 건물 내진 보강 기준(ASCE/SEI 41)에서는 장비·제어반 고정 상태와 균형추 이탈 가능성을 평가하도록 했다.

 

7. 한국: 고층 건축물 중심, 확대 여부는 검토 단계

국내에서는 행정안전부가 2021년 10월 행정예고한 「승강기안전부품 안전기준 및 승강기 안전기준」 개정안(행정안전부공고 제2021-599호)에 고층 건축물 지진감지기 설치기준이 담겼다. 지진이 나면 감지기가 작동해 카를 최인접층으로 이동시키도록 하는 내용(엘리베이터 안전기준 16.1.12)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2024년 「지진 피해예방을 위한 승강기 관제운전 개선 기획연구」에서 국내외 지진감지기 기준을 비교하고, 진도를 고려한 관제운전 안전기준과 지진감지기 설치기준 확대 필요성을 검토했다. 설치 대상과 작동 기준을 어디까지 넓힐지는 아직 정책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실제 피해 경험도 있다. 아파트관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7년 포항 지진 때 승강기 갇힘 고장이 45건 발생했지만 모두 구조돼 인명 피해는 없었다. 공단은 진앙과 가까운 포항 북구 124개 현장 719대를 긴급 점검했다. 점검 항목은 기계실 벽 균열, 권상기 기계대 기울어짐, 승강로·승강장 균열, 가이드레일 변형, 피트 균열·누수 등이었다.

 

구분 한국 일본 미국
주요 근거 승강기안전부품 안전기준 및 승강기 안전기준(행정안전부 고시) 건축기준법 시행령, 국토교통성 고시, 내진 설계·시공 지침 ASME A17.1 Section 8.4, ASCE/SEI 7
지진 감지·관제운전 고층 건축물 지진감지기 설치기준(2021년 개정안 행정예고) 2009년 지침에서 P파 관제운전 규정 분속 150피트 초과 엘리베이터에 지진 스위치
정전 대비 비상전원·자동구출장치 작동 여부가 훈련 점검 과제 2009년 시행령 개정으로 정전 시 착상장치 요구 건물 비상전원 계획과 연계
구조 피해 대책 설치검사 기준상 권상기 등 고정 2013년 균형추 이탈 방지·에스컬레이터 탈락 방지 고시 균형추 이탈 평가, 장비 고정 설계
최근 과제 설치 대상 확대, 진도 기준 도입 검토 장주기 지진동, 대량 정지 시 복구 기존 건물 내진 보강

※ 각국 기준의 세부 적용 범위는 판·개정에 따라 다르므로 실제 적용 시 원문을 확인해야 한다.

 

8. 국내 업계에 주는 시사점

국내 지진 위험은 일본보다 낮지만, 2016년 경주와 2017년 포항 지진으로 중규모 지진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일본 사례가 보여주듯 지진 대비는 감지기 한 개로 끝나지 않는다. 감지, 최인접층 정지, 정전 대비, 구조물 고정, 복구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피해율이 실제로 떨어진다.

특히 지진과 정전이 겹치는 상황이 가장 취약하다. 공단 훈련에서도 비상발전기가 승강기까지 전원을 공급하는지, 정전 시 자동구출장치가 작동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과제가 제기됐다. 기존 건물은 감지기가 없거나 관제운전이 선택사양으로 설치된 경우도 있을 수 있어, 리모델링이나 부품 교체 때 함께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대규모 정지가 나면 유지관리 인력이 동시에 부족해진다. 수많은 승강기가 한꺼번에 멈출 때 어떤 건물부터 갈지, 원격 진단으로 임시 복구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미리 정해 두는 것이 다음 과제다.


엘모아 한 줄 요약

지진 때 엘리베이터 안전은 최인접층 정지, 정전 대비, 균형추·레일 고정, 점검 후 재가동까지 한 세트로 갖춰져야 한다. 일본은 기준을 적용한 설비의 피해율을 절반 수준으로 낮췄고, 한국은 고층 건축물 중심의 감지기 기준을 어디까지 넓힐지 검토하고 있다.

업계 체크포인트

  • 건물주·관리소장: 우리 건물 승강기에 지진감지기와 지진관제운전 기능이 있는지, 비상발전기가 승강기까지 전원을 공급하는지 확인한다.

  • 유지관리업체: 지진 뒤에는 리셋 전에 가이드레일, 레일 브래킷, 균형추 블록, 로프·이동케이블 걸림을 반드시 점검하고, 대량 정지에 대비한 출동 우선순위를 정해 둔다.

  • 제조사: 고층·초고층 현장에는 장주기 지진동과 로프 흔들림에 대응하는 관제운전, 자동 진단 기능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 안전장치·점검: 지진감지기 작동 시험과 정전 시 자동구출장치 작동 여부를 정기 점검 항목에 넣어 실제로 동작하는지 확인한다.

  • 설계·리모델링: 기존 건물 승강기를 교체하거나 제어반을 바꿀 때 지진관제운전과 균형추 이탈 방지 구조를 함께 반영한다.

엘모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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