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불나면 엘리베이터 타지 마세요”…초고층 시대에도 이 상식은 맞을까

뉴스 Profile elmoa 2026-08-31 08:15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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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엘모아=편집부] 화재가 발생하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계단으로 대피하라는 말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아파트에서도 똑같이 배운다. 지금도 이 원칙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일반 승강기는 화재 대피를 위해 만들어진 설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전이 발생할 수 있고, 승강로를 통해 연기가 이동할 수 있으며, 소방활동 과정에서 물이 유입될 수도 있다. 화재관제운전에 따라 승강기가 특정 층으로 복귀하거나 운행을 중단할 수도 있다.

문제는 건물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10층, 20층 높이의 건물을 전제로 만들어진 우리의 화재대피 상식이 50층, 80층, 100층이 넘는 초고층 건축물에서도 그대로 정답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100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모든 사람에게 계단으로 내려가라고 하는 것이 정말 가장 안전한 방법일까. 건강한 성인도 수십 개 층을 계단으로 내려오는 동안 체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고령자와 장애인, 어린이, 임산부, 부상자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수천 명이 동시에 계단으로 몰리면 피난계단 자체가 거대한 병목구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세계의 초고층 화재대피 전략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화재=승강기 사용금지”가 거의 절대적인 원칙이었다면 지금은 “일반 승강기는 사용하지 않되, 화재 대피를 위해 특별히 설계된 승강기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최근 중국 청두의 높이 468m 초고층 건물을 대상으로 실시된 피난 시뮬레이션에서는 계단만 이용하는 경우와 계단·승강기를 함께 이용하는 여러 대피전략을 비교했다. 그 결과 승강기와 계단을 적절하게 분담시킨 방식에서 전체 대피시간이 계단만 이용한 경우보다 약 35%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났다.

물론 이 숫자 하나를 두고 “화재가 나면 승강기를 타는 것이 35% 안전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특정 초고층 건물을 대상으로 한 시뮬레이션 결과다. 실제 화재에서는 화재 발생층과 연기 확산, 승강기 운행상태, 전원공급, 대피자의 행동, 소방활동 등 훨씬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중요하다.

 

초고층에서 승강기를 대피전략에서 완전히 제외하는 것이 정말 합리적인가.

미국은 이미 이 질문에 제도적으로 답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건축기준인 IBC에는 ‘Occupant Evacuation Elevator’, 즉 건물 이용자의 피난을 목적으로 하는 승강기가 별도로 규정돼 있다. 이는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승강기와는 다르다. 화재가 발생해도 일정 시간 운행할 수 있도록 비상전원을 확보하고, 승강로와 승강장을 화염과 연기로부터 보호하며, 물의 유입을 방지하고, 이용자에게 승강기 이용 여부를 안내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이러한 승강기를 단순한 부가설비가 아니라 건물 전체 피난능력의 일부로 본다는 점이다.

초고층 건물에서는 몇 대의 피난용승강기가 필요한지 계산할 때 실제로 사람들을 얼마나 빨리 이동시킬 수 있는지 검토한다. 일정 시간 안에 건물 이용자를 대피시킬 수 있는지, 가장 혼잡한 층의 인원을 얼마나 빠르게 빼낼 수 있는지가 설계의 일부가 된다.

승강기가 더 이상 ‘화재가 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장비’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2001년 미국 세계무역센터 테러 이후의 경험도 있다.

당시 초고층 건물의 대규모 피난과정에서 계단만으로 수많은 사람을 이동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특히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계단으로 내려가라”는 지시는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화재안전의 목표가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것이라면, 가장 이동능력이 좋은 사람만을 기준으로 피난수단을 설계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미국뿐 아니라 여러 국가의 초고층 건축·방재설계에서는 계단과 승강기를 서로 경쟁하는 수단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피난수단으로 보는 방향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에도 이미 비슷한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 건축법은 30층 이상 또는 높이 120m 이상의 고층건축물에 피난용승강기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난용승강기는 일반 승강기와 다르게 승강장과 승강로를 내화구조로 보호하고, 제연설비와 비상전원을 확보해야 한다. 화재가 발생해 일반전원이 끊기더라도 일정 시간 승강기를 운행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전원과 배선보호조치도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상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우리는 피난용승강기를 법으로 설치하도록 해놓고, 국민에게는 여전히 “화재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는 말만 가르치고 있다.

물론 일반 승강기와 피난용승강기를 구분하지 않고 “화재 때 승강기를 타도 된다”고 교육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그렇다고 현재처럼 모든 승강기를 하나로 묶어 이용금지만 강조하는 것도 완전한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피난용승강기가 설치돼 있는지 알고 있는 주민이 얼마나 될까.

피난용승강기와 비상용승강기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화재가 발생했을 때 피난용승강기를 누가 먼저 이용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기다려야 하는지, 승강기가 실제로 피난운전으로 전환됐는지를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법으로 설비를 만들어 놓는 것과 실제 화재 때 그 설비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비상용승강기’와 ‘피난용승강기’조차 일반 이용자에게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상용승강기는 주로 소방대원의 소화·구조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반면 피난용승강기는 화재 발생 시 건물 이용자의 피난을 지원하기 위한 설비다. 일반 승강기는 다시 별개의 설비다.

목적부터 다른 세 종류의 승강기를 놓고 국민에게는 단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마라”는 한 문장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화재대피 교육도 조금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화재 때 엘리베이터를 타지 마십시오”가 아니라,

“화재 때 일반 승강기는 이용하지 마십시오. 다만 건물에 설치된 피난용승강기는 건물의 피난계획과 안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정도로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피난용승강기가 설치돼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화재와 동시에 승강기 앞으로 뛰어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무런 운영계획 없이 승강기를 개방하면 수백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승강장에 몰리면서 또 다른 위험을 만들 수 있다.

어느 층부터 피난시킬 것인지, 고령자와 장애인 등 이동약자를 우선할 것인지, 화재층과 인접층의 승강기 운행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지, 계단 이용자와 승강기 이용자를 어떻게 분산할 것인지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피난용승강기의 핵심은 승강기 자체가 아니라 운영계획인 이유다.

최근의 초고층 대피 연구에서도 단순히 승강기를 많이 이용하는 방식이 가장 좋은 결과를 보인 것은 아니다. 층별 인원을 나누고 승강기와 계단의 이용자를 적절하게 배분했을 때 대피효율이 가장 높았다.

결국 “승강기가 빠르니 모두 승강기로 내려가자”도 정답이 아니고, “승강기는 위험하니 무조건 계단만 이용하자”도 초고층에서는 충분한 답이 아니다.

시설과 사람을 함께 봐야 한다.

우리 사회의 안전정책에는 ‘금지’가 많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지 마라. 승강기 안에서 뛰지 마라. 화재가 나면 승강기를 타지 마라.

금지는 가장 이해하기 쉽고 관리하기 쉬운 안전대책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건축물이 복잡해질수록 안전 역시 단순한 금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100층 건물을 만들어 놓고 모든 사람에게 계단으로만 내려가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안전정책일 수는 있어도 가장 현실적인 안전정책은 아닐 수 있다.

특히 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고층 공동주택에는 고령자도 살고 있고 장애인도 산다. 화재 때 평소에도 계단 이용이 어려운 사람에게 수십 층의 계단을 내려가라는 것은 사실상 대피방법을 제공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동약자의 안전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승강기를 타지 마라”는 안내문을 하나 더 붙이는 것일까.

아니면 화재 때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피난용승강기를 만들고, 그 승강기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관리하며, 주민들에게 이용방법을 반복적으로 교육하는 것일까.

답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피난용승강기라는 제도를 이미 도입했다면 이제부터는 설치 중심의 정책에서 운용 중심의 정책으로 넘어가야 한다.

정기적인 소방훈련에서도 단순히 계단으로 내려가는 훈련만 할 것이 아니라 피난용승강기의 위치와 역할을 알려야 한다. 건물 안내도에도 일반 승강기와 피난용승강기를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관리주체와 소방·방재 담당자 역시 실제 화재 때 어떤 방식으로 피난용승강기를 운영할 것인지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물 이용자가 알아야 한다.

좋은 안전설비를 설치해 놓고 아무도 사용방법을 모르는 것은 안전설비가 없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일반 승강기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앞으로도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그 원칙 하나가 초고층 건물의 모든 피난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초고층 시대의 안전은 승강기를 무조건 멈추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멈춰야 할 승강기는 멈추고, 끝까지 움직여야 할 승강기는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둘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배워온 “불나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마세요”라는 문장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그 뒤에 한 문장을 더 붙여야 할 시대가 됐다는 이야기다.

“다만, 화재 대피를 위해 설계된 피난용승강기는 안내와 피난계획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초고층 건물이 일상이 된 지금, 이것이 더 현실적인 화재대피 상식에 가까울 것이다.


엘모아 한 줄 요약

화재 때 일반 승강기를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초고층 시대에는 ‘승강기 사용금지’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피난용승강기를 실제 대피수단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까지 안전정책이 발전해야 한다.

업계 체크포인트

  • 초고층 건물에서는 계단과 피난용승강기를 함께 활용하는 피난전략이 해외에서 제도와 연구로 확대되고 있다.
  • 한국도 30층 이상 또는 높이 120m 이상 고층건축물에 피난용승강기를 의무화했지만,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인지·교육·운영체계는 더 보완할 필요가 있다.
  • 피난용승강기는 일반 승강기와 다르며, 소방대원이 주로 이용하는 비상용승강기와도 목적이 다르다.
  • 앞으로는 ‘설치했는가’보다 실제 화재 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안전기준이 돼야 한다.

엘모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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