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이 문제일까…에스컬레이터 국산화 논란 다시 보기

뉴스 Profile elmoa 2026-06-16 08:17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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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엘모아=편집부] 최근 국내에서 국산 에스컬레이터 개발과 생산 재개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에스컬레이터 국산화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산 제품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면서 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에스컬레이터 문제를 단순히 “중국산이냐, 국산이냐”의 구도로만 바라보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은 사실상 중국산 제품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국회와 업계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국내에 설치되는 에스컬레이터 대부분은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을 단순히 “중국산이 싸서 시장을 장악했다”고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승강기·에스컬레이터 시장 중 하나이며, 자국 내 대규모 도시화와 철도·공항·상업시설 확충, 동남아·중동·인도 등 해외 수출시장을 기반으로 압도적인 생산량을 확보해 왔다.

대규모 생산은 곧 규모의 경제로 이어졌다.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제조 단가는 낮아지고 연구개발 투자 여력은 커진다. 시장조사기관 ResearchAndMarkets에 따르면 중국 승강기·에스컬레이터 시장은 2024년 348억7000만 달러 규모로 평가됐으며 2030년에는 521억5000만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 역시 중국의 엘리베이터 보유량이 2016년 기준 400만 대로 미국 90만 대를 크게 앞섰고, 신규 설치 시장 기준으로는 중국이 세계 신규 설치의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최근 충칭 우산에서는 길이 905m, 고도 차 243m 규모의 대형 야외 에스컬레이터 시스템이 조성되는 등 중국은 단순한 생산기지를 넘어 대규모 인프라 실증 시장 역할도 하고 있다. 이런 시장 규모와 생산 기반을 고려하면 중국산 에스컬레이터의 경쟁력은 단순 저가 공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반면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은 상대적으로 작다. 업계에서는 국내 연간 에스컬레이터 수요가 수천 대 수준에 불과해 대규모 생산설비와 부품 공급망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국내 생산 에스컬레이터의 모델 인증 사례가 사실상 끊겼다가 최근 일부 업체가 국산 에스컬레이터 개발에 다시 나서는 상황이다. 국내 제조 기반이 약화된 이유 역시 가격 경쟁만이 아니라 생산량, 공급망, 기술 축적, 품질 안정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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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제기되는 “중국산이라 품질이 낮다”는 주장도 제도적으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국내에 설치되는 에스컬레이터는 제조국과 관계없이 「승강기 안전관리법」에 따른 안전인증을 받아야 한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 등 인증기관은 에스컬레이터 본체와 주요 안전부품에 대해 시험과 생산체계 평가를 거쳐 적합 여부를 판단한다. 디딤판, 디딤판체인, 구동기 등 주요 부품 역시 인증 대상이다. 즉 중국에서 생산됐다고 해서 아무 제품이나 국내 공공시설이나 도시철도에 설치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용자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잦은 고장과 장기간 운행 중단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업계에서는 제품 국적보다 유지관리와 입찰 구조를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에스컬레이터 신규 설치와 유지관리 용역은 공공입찰을 통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가격 경쟁이 과도하게 작동하면 충분한 기술력과 책임 능력을 갖춘 업체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사업을 따내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일부 현장에서는 입찰 문턱이 낮아 검증이 부족한 업체가 설치나 유지관리 시장에 진입하면서 이용자 입장에서는 “고장이 잦다”고 느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지는 문제도 있다. 에스컬레이터는 제조사, 설치업체, 유지관리업체, 발주기관이 함께 얽혀 있는 설비다. 설치 이후 3년 무상보증 조건이 붙어 있더라도 실제 고장이 발생하면 책임을 명확히 가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제조사는 유지관리를 다른 업체가 맡았기 때문에 관리 문제를 주장할 수 있고, 유지관리업체는 이전 업체나 제조·설치 단계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계약이 바뀐 뒤에는 “기존부터 있었던 문제”인지, “새 유지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긴다.

이 과정에서 고장은 장기간 방치될 수 있다. 제조사와 유지관리업체가 책임 소재를 두고 다투는 사이 발주기관은 추가 예산이나 별도 공사 발주 절차를 검토해야 하고, 이용자는 운행 중단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중국산 제품 자체가 아니라, 제품 공급 이후 유지관리와 책임 구조가 얼마나 명확하게 작동하느냐에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특히 도시철도나 공공시설처럼 이용량이 많은 현장에서는 에스컬레이터가 단순 편의시설이 아니라 대중교통 접근성의 핵심 설비다. 고장이 장기화되면 노약자와 장애인, 유모차 이용자 등 교통약자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 제조국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고장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고, 얼마나 빠르게 복구하며,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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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화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공급망 안정성, 긴급 대응, 기술 자립, 국내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국산화의 필요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국산화가 자동으로 품질 개선이나 고장 감소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제품이 시장에서 신뢰를 얻으려면 중국산과 동일한 기준에서 가격, 품질, 납기, 유지관리 대응력, 부품 공급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단순히 “국산이기 때문에 우선 구매해야 한다”는 논리만으로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국내 에스컬레이터 산업이 직면한 과제는 제조국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에 가깝다. 중국산이 시장을 장악한 이유는 저가 공세만이 아니라 대규모 생산량과 공급망, 축적된 기술력, 글로벌 수요 대응 능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반대로 국내 시장의 고장과 유지관리 불만 역시 중국산 여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공공입찰 구조, 유지관리 계약 방식, 책임 소재, 부품 수급 체계가 함께 개선되지 않는 한 국산화만으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에스컬레이터 국산화 논란은 결국 “중국산이 문제냐”는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국내 시장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국산 제품 그 자체인가, 아니면 고장 났을 때 빠르게 책임지고 복구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유지관리 체계인가. 업계가 답해야 할 질문은 이제 그 지점에 있다.


엘모아 한 줄 요약
중국산 에스컬레이터 논란의 본질은 제조국보다 시장 구조와 유지관리 책임 체계에 있다. 국산화가 해답이 되려면 가격·품질·부품 공급·사후관리 경쟁력을 모두 입증해야 한다.

업계 체크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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