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도 안 받았는데 자재부터 발주…법원 “아파트가 배상할 책임 없다”

뉴스 Profile elmoa 2026-07-22 17:22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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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모아=편집부] 승강기 보수업체가 계약서에 정한 조건을 지키지 않고 계약금 수령 전에 자재를 발주했다면, 이후 공사계약이 취소되더라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자재비를 청구하기 어렵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특히 해당 공사가 승강기의 단순한 유지·보수가 아닌 대규모 부품 교체에 해당한다면 입주자대표회의 의결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며, 집합건물법상 관리단집회 결의와 장기수선계획 조정 절차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도 함께 제시됐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승강기 제조·보수업체 A사가 서울 강서구 B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약 3665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해당 판결은 지난달 24일 확정됐다.

“계약금 수령 후 자재 발주” 특약 체결

A사와 B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해 3월 승강기 보수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공사기간과 함께 ‘계약금을 받은 뒤 자재를 발주한다’는 내용이 특약사항으로 포함됐다.

그러나 계약 체결 당시 A사는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계약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이후 A사는 착공계와 자재승인요청서를 제출했고, 입주자대표회의는 내부 분쟁을 이유로 공사를 잠시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럼에도 A사는 공사에 필요한 자동구출운전장치 등 일부 자재를 먼저 주문한 뒤 입주자대표회의에 계약금 40%를 선급금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약 3개월 뒤 해당 계약이 적법한 의결 절차 없이 작성됐다며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업체 “일방적 계약 해제…자재비 배상해야”

A사는 입주자대표회의의 계약 취소 통보가 부당한 일방적 계약 해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승강기 보수공사를 위해 자동구출운전장치와 관련 자재 등을 발주했으므로, 이에 들어간 비용 약 3665만원을 입주자대표회의가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해당 공사계약이 처음부터 유효하게 체결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 “대규모 부품 교체는 공용부분 관리행위”

재판부는 해당 공사가 승강기의 기존 상태를 단순히 유지하기 위한 소규모 수선이 아니라, 주요 부품을 대규모로 교체하는 공사에 해당한다고 봤다.

승강기는 아파트 구분소유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용부분이다. 공용부분의 성능이나 이용에 영향을 주는 대규모 교체공사는 단순한 보존행위가 아니라 집합건물법상 관리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관리행위에 해당한다면 관리단집회에서 구분소유자들의 적법한 결의를 거쳐야 한다.

재판부는 B아파트에서 해당 공사계약 체결을 승인하는 관리단집회 결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입주자대표회의가 체결한 계약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승강기 교체 수리’ 찬반 투표만으로는 부족

A사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계약 체결 전 회의를 열어 승강기 수리공사에 관한 결의를 진행했기 때문에 계약이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회의에서 다룬 안건이 포괄적인 ‘승강기 교체 수리’에 관한 찬반 투표였을 뿐, 실제 추진된 대규모 부품 교체공사의 구체적인 범위나 A사와의 계약 체결 자체를 의결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공사 필요성에 대한 일반적인 찬성과 특정 업체·금액·공사 범위가 포함된 계약 체결 승인은 구분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장기수선계획 조정 절차도 지키지 않아

재판부는 해당 공사가 아파트 장기수선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장기수선계획에 없는 공사를 진행하려면 입주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 계획을 수시조정하는 등 공동주택관리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B아파트는 이 같은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법원은 관리단집회 결의가 없었고 장기수선계획 조정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으므로 해당 계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계약금 받기 전 자재 발주한 업체 책임

이번 판결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쟁점은 업체가 자재를 발주한 시점이다.

계약서에는 계약금을 받은 뒤 자재를 주문하도록 명확하게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A사는 계약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재를 먼저 주문했다.

재판부는 A사가 계약서에 정한 발주 조건을 따르지 않고 일방적으로 제3자에게 자재를 주문한 만큼, 그 비용 발생에 입주자대표회의의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자재 선발주를 별도로 요청하거나 승인했다는 사정도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설령 공사계약이 유효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업체가 특약을 위반해 먼저 지출한 자재비를 입주자대표회의가 배상해야 할 손해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자재 발주 전 계약 효력부터 확인해야

승강기 공사에서는 현장 일정이나 부품 납기를 맞추기 위해 계약 직후 자재를 발주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자동구출운전장치, 제어반, 구동기, 도어 장치처럼 현장별 사양에 맞춰 제작하거나 설정해야 하는 부품은 발주 후 취소나 다른 현장 전용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계약금 지급, 선급금 보증, 자재승인, 관리단집회 결의 등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업체가 먼저 자재를 주문하면 계약이 취소되더라도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공사업체는 계약서에 자재 발주 조건이 있다면 해당 조건이 충족됐음을 서면으로 확인한 뒤 주문해야 한다.

관리사무소장의 구두 요청이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서명만으로 계약이 완전히 확정됐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아파트도 공사 안건 구체적으로 의결해야

아파트 측도 단순히 ‘승강기 수리’ 또는 ‘노후 부품 교체’와 같은 포괄적인 문구만으로 의결해서는 분쟁을 예방하기 어렵다.

의결서나 회의록에는 최소한 다음 내용이 구체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 공사의 목적과 필요성

  • 교체 대상 부품과 공사 범위

  • 공사금액과 계약 상대방

  • 계약금과 중도금 지급조건

  • 자재 발주 및 공사 착수 시점

  • 장기수선충당금 사용 여부

  • 장기수선계획 반영 또는 수시조정 여부

  • 관리단집회나 입주자 동의 필요 여부

공사 종류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 의결만으로 가능한지, 관리단집회 결의까지 필요한지를 계약 전에 검토해야 한다.

계약 무효와 손해배상은 별도 문제

이번 판결은 계약이 무효라는 사정뿐 아니라 업체가 계약 조건을 위반해 자재를 발주했다는 점까지 함께 판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계약이 취소됐다고 해서 업체가 지출한 모든 비용이 자동으로 발주처의 손해배상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업체가 계약서에서 정한 절차를 지켰는지, 발주처가 자재 주문을 승인했는지, 비용 지출과 계약 취소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지 등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

승강기 공사업체와 관리주체 모두 계약서 작성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의결, 계약금 지급, 자재승인, 자재 발주, 공사 착수의 순서를 명확하게 관리해야 한다.


엘모아 한 줄 요약

승강기 업체가 ‘계약금 수령 후 자재 발주’ 특약을 어기고 먼저 자재를 주문했다면, 공사계약이 취소돼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자재비 손해배상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판결이 나왔다.

업계 체크포인트

  • 계약 전 관리단집회와 입주자대표회의 의결 범위 확인

  • 승강기 공사가 보존행위인지 관리행위인지 검토

  • 장기수선계획 포함 여부와 수시조정 절차 확인

  • 회의록에 공사범위·업체·금액·계약조건 구체적으로 기재

  • 계약금 또는 선급금 입금 확인 후 자재 발주

  • 자재승인요청서에 발주 승인 여부 명확하게 표시

  • 구두 요청보다 공문·이메일 등 서면 승인 확보

  • 주문제작 자재의 취소비용과 귀속조건 계약서에 반영

  • 계약 무효 시 자재비 부담 주체를 특약으로 명시

  • 공사 착수 전 계약 효력과 의결절차 재확인

엘모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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