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사례] “설치업체에 평생 묶이지 않게”…美 공공기관은 ‘비독점 승강기’부터 산다

뉴스 Profile elmoa 2026-08-10 15:36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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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엘모아=편집부] 승강기를 설치한 뒤 유지관리업체를 바꾸려고 했지만 특정 제조사의 부품을 구하기 어렵거나, 전용 진단장비와 프로그램이 없어 다른 업체가 제대로 손을 대기 어려운 상황.

국내 승강기 유지관리시장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이른바 ‘제조사 종속’ 문제다.

그런데 미국의 한 지방정부는 이 문제를 승강기가 설치된 뒤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 처음 승강기를 발주할 때부터 특정 제조사에 종속되지 않는 ‘비독점(Non-Proprietary) 승강기’를 요구한다.

미국 버지니아주 Fairfax County가 현재 적용하고 있는 건축·엔지니어링 가이드라인을 보면 모든 승강기 장비를 원칙적으로 비독점 장비로 구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여러 회사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 부품만 풀어놓는 게 아니다…진단장비·소프트웨어까지 개방

Fairfax County가 정의하는 비독점 승강기의 조건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우선 승강기 부품은 자격을 갖춘 구매자가 일반적으로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고장 진단과 유지관리, 조정,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장비와 도구 역시 특정 제조사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갖춘 다른 승강기 업체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교체와 정비에 필요한 기술문서 역시 적격 승강기 업체가 합리적인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요구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간다.

승강기 유지관리와 고장진단에 필요한 서비스툴, 프로그래머, 컴퓨터, 소프트웨어 칩 등은 준공 후 Fairfax County에 넘겨 현장에 영구적으로 비치하도록 한다.

해당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는 사용기간이나 만료일을 설정할 수 없으며, 외부에서 제조사 전용 서비스툴을 가져와야만 정비할 수 있는 시스템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두고 있다. 

기술자용 매뉴얼과 배선도, 교육자료도 발주기관에 제공해야 한다.

즉 승강기를 설치한 회사가 철수하거나 유지관리 계약이 끝나더라도 다른 자격 있는 유지관리업체가 설비를 이해하고 진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단을 건물주가 확보하도록 하는 구조다. 

  • 승강기를 산 게 아니라 ‘유지관리 선택권’까지 산다

이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승강기의 특성 때문이다.

승강기는 한 번 설치하면 20년 이상 사용하는 장기 설비다. 설치공사는 한 번이지만 이후에는 정기점검과 고장수리, PCB·인버터·브레이크·도어장치 등 수많은 부품교체가 반복된다.

따라서 초기 설치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해당 승강기의 전체 비용이 저렴하다고 볼 수 없다.

설치 후 다른 유지관리업체가 부품을 확보할 수 없거나 전용 프로그램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건물주는 사실상 원 제조사나 특정 협력업체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진다.

Fairfax County 방식은 이를 ‘고장 난 다음 해결해야 할 유지관리 문제’가 아니라 ‘발주할 때부터 막아야 할 설계조건’으로 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해당 지침의 비독점 요건에서 도출되는 의미다.

  • 한국도 법은 이미 ‘부품·프로그램 제공’을 요구한다

한국에도 관련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 승강기 안전관리법 제8조는 제조·수입업자가 승강기 유지관리용 부품뿐 아니라 점검·정비·검사에 필요한 장비 또는 소프트웨어와 비밀번호 등 정보 접근권한까지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리주체나 등록된 유지관리업체 등이 이를 요청할 경우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2일 이내에 요청에 따라야 한다. 유지관리업체에는 기술지도와 교육, 유지관리 매뉴얼 등 관련자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시행령도 동일한 형식의 유지관리용 부품과 장비·소프트웨어를 원칙적으로 최종 판매·양도일로부터 10년 이상 제공할 수 있도록 요구한다. 

한국 역시 제조사 전용부품과 기술정보 때문에 유지관리 경쟁이 막히지 않도록 일정한 안전장치를 이미 법에 넣어둔 셈이다.

하지만 Fairfax County 사례와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국 제도는 기본적으로 승강기가 설치된 뒤 필요한 부품이나 장비를 요청했을 때 제조사가 제공하도록 하는 ‘사후관리 의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Fairfax County는 발주자가 처음 승강기를 살 때부터 “우리 건물에 설치하려면 제3의 적격업체도 부품을 구하고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품 선정단계에서 요구한다. 

  • 한국 공공기관이 배워야 할 것은 ‘최저 설치가격’이 아니다

국내 공공기관의 승강기 발주에서도 이 개념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승강기 입찰 평가에서 속도, 용량, 디자인, 설치가격과 함께 ‘유지관리 개방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규 승강기나 전면교체 발주 때 ▲등록된 제3의 유지관리업체가 주요 부품을 구매할 수 있는지 ▲진단장비와 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는지 ▲배선도와 유지관리 매뉴얼을 받을 수 있는지 ▲특정 제조사 전용 서비스툴 없이 고장진단이 가능한지 ▲주요 부품의 장기 공급계획이 있는지 등을 평가항목으로 넣을 수 있다.

안전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아무에게나 공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승강기 안전관리법에 따라 등록되고 적정한 기술능력을 갖춘 유지관리업체가 제조사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정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구조를 줄이자는 것이다.

  • 설치할 때 1억원 아끼고 20년간 더 지불한다면

공공조달에서는 구매가격이 중요하다.

하지만 승강기의 경우 초기 설치가격만 보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A사 승강기가 B사보다 설치비가 저렴해 낙찰됐더라도 이후 20년간 주요 PCB와 인버터, 브레이크, 전용 서비스툴 등에 지속적으로 높은 비용이 발생하고 다른 업체가 유지관리하기 어렵다면 실제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총비용은 더 커질 수 있다.

조달청의 다수공급자계약 제도 역시 가격뿐 아니라 품질·성능·효율 등이 유사한 제품 사이에서 수요기관의 선택권을 높이는 것을 제도의 취지 가운데 하나로 설명하고 있다.

승강기에서는 여기에 ‘향후 유지관리업체를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요소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부터 10년 또는 20년의 예상 유지관리비, 주요 교체부품 가격, 부품 공급기간과 함께 비독점성까지 평가한다면 민간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 ‘승강기를 누가 설치했나’보다 ‘앞으로 누가 고칠 수 있나’

Fairfax County 사례가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승강기를 구매한다는 것은 좋은 기계를 설치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 그 기계를 앞으로 누가 고칠 수 있는지까지 구매해야 한다.

발주 당시에는 여러 승강기 업체가 경쟁하지만 설치가 끝난 순간부터 한 제조사만 부품과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다면 설치시장에서는 경쟁이 있었어도 이후 유지관리시장에서는 경쟁이 크게 약해질 수 있다.

한국도 이미 법으로 부품과 진단장비, 소프트웨어 제공의무를 두고 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공기관 승강기부터 ‘설치 이후의 경쟁’을 발주조건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때다. 

엘모아 한 줄 요약

미국 Fairfax County는 승강기를 살 때 기계만 구매하지 않는다. 다른 적격업체도 부품을 구하고 고칠 수 있는 ‘유지관리 선택권’까지 발주조건으로 확보한다.

업계 체크포인트

  • Fairfax County는 공공시설 승강기에 비독점 장비를 요구하고 부품·진단도구·기술문서를 제3의 적격업체도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 서비스툴과 프로그램도 현장에 영구 비치하도록 하고 사용기간 제한이나 외부 제조사 전용툴 의존까지 차단한다. 
  • 한국도 법상 부품·진단장비·소프트웨어 제공의무가 있지만, 미국 사례처럼 이를 신규 승강기 발주 평가기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공공기관부터 설치가격 대신 생애주기 비용과 유지관리 선택권을 함께 평가한다면 제조사 종속과 부품가격 정보비대칭을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엘모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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