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출은 저녁 무렵에 들어왔다.
고층 오피스텔 승강기에 사람이 갇혔다는 연락이었다.
관리인의 목소리부터 다급했다.
“기사님, 사람 하나가 안에 갇혀 있어요. 계속 문 두드리고 있고요. 빨리 와주셔야 돼요.”
나는 대답 대신 위치부터 다시 확인했다.
주소, 동, 호기, 승강기 번호.
이럴 때는 마음이 급해도 순서가 먼저다.
하나라도 틀리면 더 늦어진다.
현장에 도착하자 로비 공기부터 달라져 있었다.
관리인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몇몇 주민은 멀찍이 떨어져 닫힌 승강기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조용했다.
조용한데도 긴장은 그대로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카 위치부터 확인했다.
층에 걸려 있는지,
아니면 층과 층 사이에 멈춰 있는지.
표시 상태와 반응을 빠르게 훑고 바로 기계실로 올라갔다.
이럴 때 제일 싫은 건 추측이다.
정확히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곧 될 겁니다”라고 말하는 건 위로가 아니라 거짓말에 가깝다.
기계실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올라왔다.
먼지, 기름기, 오래된 열기.
나는 곧바로 제어반 상태창을 확인했다.
에러코드가 떠 있었다.
일단 원인은 읽혔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안 뜨는 침묵보다는, 뭐라도 떠 있는 쪽이 낫다.
나는 뒤따라 들어온 관리인을 돌아봤다.
“안에 갇힌 분한테 계속 연락해 주세요.”
“뭐라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금방 꺼내드릴 거라고 하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엘리베이터는 완전 밀폐공간이 아니니까 숨 못 쉬는 상황은 아니라고 꼭 전달하시고요.”
관리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작업 중에 잠깐 전등이 꺼질 수도 있다고 미리 말씀해 주세요. 놀라지 말라고요. 계속 말도 걸어주시고요. 혼자 있다고 느끼면 더 불안해집니다.”
“예, 예. 바로 말씀드릴게요.”
관리인이 황급히 내려갔다.
기계실에 혼자 남자, 순간 조용해졌다.
조용했지만 아래에서는 아직 누군가가 닫힌 문 안에서 세상을 붙잡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생각이 나를 더 무겁게 눌렀다.
나는 제어반 앞에 서서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이럴 때 기사 손은 빨라 보여도 머릿속은 더 느려져야 한다.
급한 건 갇힌 사람이지, 내 판단이 아니다.
잠시 상태를 지켜본 뒤, 절차대로 전원을 차단했다.
정해진 간격을 두고 메인 전원을 다시 올렸다.
그리고 상태창을 확인했다.
짧은 정적.
곧 화면이 바뀌었다.
멈춰 있던 놈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 쪽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충돌이 있었던 건지, 꼬여 있던 상태가 풀리면서 반응이 살아난 거였다.
나는 눈으로 한 번 더 확인한 뒤 바로 무전을 잡았다.
“관리인님, 안에 계신 분한테 말씀하세요. 지금 정상 복귀 확인됐다고요. 곧 가까운 층으로 보낼 겁니다.”
무전기 너머로 안도 섞인 목소리가 돌아왔다.
“예, 전달하겠습니다.”
그래도 끝난 건 아니었다.
정상작동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상황이 바로 끝나는 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카를 가장 가까운 층으로 붙이고, 문이 열리고, 사람이 자기 발로 걸어 나오는 것까지 봐야 끝이다.
만약 이번에도 복귀하지 않았으면 그때는 다른 절차로 들어갔을 거다.
구동기 쪽에서 수동 구조로 카를 올리거나 내려서 층에 맞춘 뒤 사람을 꺼내야 했다.
그건 그거대로 더 오래 걸리고, 더 많은 시선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카가 천천히 가까운 층으로 내려왔고, 문이 열렸다.
안에서 사람이 한 명 비틀거리듯 나왔다.
마흔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빛은 이미 다른 데 가 있었다.
안도했다기보다, 공포가 아직 몸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표정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가 내 팔을 거의 붙잡듯 말했다.
“저 패닉 온 것 같아요. 119 불러주세요. 지금 당장. 저 숨이 안 쉬어져요.”
갇힌 시간은 길지 않았다.
채 10분도 안 됐을 거다.
그런데 그건 내 쪽 계산일 뿐이었다.
안에 있던 사람한테는 10분이 아니라, 문이 닫힌 채 끝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그 사람은 바닥에 주저앉듯 기대더니 계속 고통을 호소했다.
숨이 막힌다, 가슴이 답답하다, 죽는 줄 알았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관리인이 옆에서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화살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돌아왔다.
“당신들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사람 죽을 뻔했잖아요.”
“이걸 지금 고쳤다고 끝이에요?”
“내가 무슨 일 생겼으면 책임질 거예요?”
“가만 안 둘 겁니다. 진짜.”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정확히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프다고 하는 사람 앞에서
“갇힌 시간은 짧았습니다” 같은 말은 할 수 없다.
“지금은 구조됐습니다”도 위로가 안 된다.
“원인 확인 중입니다”는 더더욱 분노만 산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여자는 바닥에 앉은 채 계속 나를 올려다보며 쏟아냈다.
욕이라기보다, 자기 공포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독을 전부 내 쪽으로 뱉어내는 느낌에 가까웠다.
나는 그 앞에서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서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람을 꺼냈다.
다친 데 없이 구조했다.
큰 사고로 번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구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제일 늦게 도착한 욕받이처럼 서 있었다.
한참 뒤 여자는 119를 부르라고 다시 소리쳤고, 책임 운운하는 말을 남기며 관리인에게까지 윽박을 지른 뒤 자리를 떴다.
끝까지 나를 한 번 더 노려보고 갔다.
협박 비슷한 말도 흘렸다.
로비가 겨우 조용해졌을 때, 나는 문 앞에 멈춰 선 승강기를 한 번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 하나를 가둬 두던 문.
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닫히고, 또 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공구 가방 손잡이를 쥐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사인지, 욕받이인지.
사람을 꺼내는 게 내 일인 건 맞다.
고장 난 기계를 살려 놓는 것도 내 일이다.
그런데 구조가 끝난 뒤 남는 감정까지 전부 받아내는 것도 내 일이어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안에서 10분을 버텼고,
누군가는 밖에서 그 10분 동안 뛰어왔다.
그런데 현장엔 늘 가장 나중에 도착한 사람에게 책임이 몰린다.
나는 고개를 한 번 숙였다가 들었다.
기계실에 남아 있던 열기와, 조금 전까지 로비를 메우던 고성의 잔향이 아직 머릿속에 같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오늘도 결국 사람을 구한 기억보다,
욕을 들은 기억이 더 오래 남을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