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베이터 문 앞에는 늘 사람이 먼저 모인다.
고장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요?”
현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여자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운동복 차림이었다. 손에는 분리수거 봉투가 들려 있었고, 표정은 이미 하루치 짜증을 다 소모한 얼굴이었다.
“애를 안고 20층을 어떻게 올라가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빨리 좀 해달라고.”
나는 공구 가방을 내려놓고 승강기 출입문 쪽만 봤다.
도어를 점검하는 척 하며 짧게 대답했다.
“하고 있습니다.”
그 네 글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여자의 목소리가 바로 높아졌다.
“그걸 누가 몰라요? 왜 고장 났냐고요. 아침부터 이 모양이면 관리가 엉망인 거 아니에요?”
뒤에서도 한마디씩 붙었다.
“점검은 제대로 한 거 맞아요?”
“이 아파트만 오면 왜 이렇게 자주 멈춰?”
“업체 바꿔야 하는 거 아냐?”
“돈은 돈대로 받으면서 맨날 고장이라니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를 시작하면 일이 멈춘다.
한 사람 설명해 주면 두 사람이 끼어들고, 세 사람이 되면 그때부터는 점검이 아니라 민원 응대가 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승강기는 그대로 서 있다.
사람들은 대개 그걸 모른다.
내가 지금 이 기계 앞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건 사과가 아니라 확인이라는 걸.
도어존 신호, 인터록, 제어반 에러 로그, 문 개폐 속도, 모터 과부하 이력.
지금 필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순서였다.
“기사님, 말이 너무 짧은 거 아니에요?”
이번엔 남자였다.
아마 입주자대표 쪽 사람인지 목소리에 괜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설명은 관리사무소 통해서 들으시면 됩니다.”
“아니, 지금 주민들이 불편해서 이러는 거잖아요.”
“그래서 고치는 중입니다.”
그 순간 주변 공기가 더 차가워졌다.
사람들은 내 말투를 싫어했다.
늘 그랬다.
싫어할 만도 했다.
고층 아파트 승강기 하나가 멈추면 그날 저녁은 통째로 망가진다.
유모차 끌고 올라가는 사람, 택배 들고 오르는 사람, 무릎 안 좋은 노인, 학원 다녀온 애들, 퇴근하고 녹초가 된 직장인까지.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도 그들과 같다.
나는 오늘 아침 여섯 시 반에 집에서 나왔다.
오전엔 상가용 엘리베이터 문 닫힘 불량, 점심 무렵엔 오피스텔 비상정지, 그리고 저녁엔 여기였다.
저녁 한 끼는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웠고, 아직 커피도 반밖에 못 마셨다.
오늘 끝나고 집에 가면 자정을 넘길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사람들 눈에 나는 그냥
늦게 오는 기사, 말투 재수 없는 기사, 빨리 못 고치는 기사였다.
나는 제어반 문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봤다.
역시나 예상했던 흔적이 보였다.
메인 접촉기 쪽 열화 자국.
도어 구동부도 한 번 손을 봤던 티가 났다.
임시로 버텨 놓은 흔적이었다. 정확히는, 버틴 척만 하고 있는 상태.
이건 단순한 리셋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오늘 밤 다시 살려 놓을 수는 있다.
그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말 그대로 오늘 밤까지만이다.
이 상태면 며칠 안에 다시 멈출 가능성이 높았다.
근본적으로 가려면 교체가 필요했다.
문제는 늘 그다음이었다.
“어때요? 금방 돼요?”
관리소장이 슬쩍 다가와 물었다.
주민들 앞에선 큰소리 치던 사람이, 정작 내 옆에 오자 목소리를 낮췄다.
“임시 복구는 해보겠습니다. 근데 부품 교체가 필요합니다.”
“많이 나와요?”
“부품값이랑 작업까지 하면 적진 않습니다.”
소장은 바로 표정을 찌푸렸다.
나는 그 얼굴을 너무 많이 봐서 이제 대사까지 외울 수 있었다.
비싸네.
꼭 해야 하나.
이번 달 예산이 없다.
다른 업체도 알아보자.
조금만 더 써보면 안 되냐.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입주자대표 회장이 왔다.
배 나온 몸에 슬리퍼를 끌고,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하러 온 사람 같은 표정으로.
“기사님. 그거 꼭 지금 바꿔야 합니까?”
나는 제어반 안쪽을 가리켰다.
“예. 지금 손보는 건 응급처치고, 다시 멈출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당장 교체는 부담돼서요. 견적부터 몇 군데 받아봐야죠.”
“받으셔도 됩니다. 대신 그동안 또 멈출 수 있습니다.”
회장은 바로 불쾌한 얼굴이 됐다.
“왜 그렇게 겁을 줘요?”
겁을 주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냥 익숙한 미래를 먼저 본 것 뿐이었다.
이 업계 사람들은 다 안다.
지금 여기서 돈을 아끼면, 결국 더 큰 불편으로 돌아온다는 걸.
근데도 대부분은 마지막까지 미룬다.
자동차는 이상한 소리만 나도 바로 센터에 넣는다.
엔진오일 교체 날짜 지나면 불안해 하고, 타이어 마모되면 바꾼다.
브레이크 패드 닳았다고 하면 돈을 들여서라도 교체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다르다.
매일 타면서도, 매일 기대면서도, 고장 나기 전까진 돈 쓰는 걸 아까워한다.
멈추고 나서야 화를 낸다.
그리고 그 화살은 대개 제일 마지막에 도착한 사람한테 꽂힌다.
정비기사.
유지보수 직원.
호출받고 온 나 같은 사람.
“일단 오늘은 되게 만들어 주세요.”
회장이 말했다.
그 말은 늘 비슷했다.
제대로 말고, 일단. 근본 해결 말고, 당장. 비용은 나중에. 책임은 당신들이.
나는 대답 대신 다시 허리를 숙였다.
손전등 불빛이 제어반 안쪽에 비쳤다.
오래된 먼지, 탔던 흔적, 느슨해진 결선, 뜯겼다 다시 닫힌 나사 자리.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한다.
누가 얼마나 미뤘는지, 얼마나 버텼는지, 어디까지 눈감았는지 다 남는다.
주민들은 뒤에서 계속 웅성거렸다.
“오늘 안에 되는 거 맞아요?”
“진짜 불편해서 못 살겠네.”
“관리비는 꼬박꼬박 내는데.”
“애들이 계단 오르다가 다치면 어쩔 거야.”
틀린 말은 없었다.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피곤했다.
누구도 완전히 틀리지 않은데,
그 틈에서 제일 많이 닳는 사람은 늘 따로 있으니까.
한참 뒤, 임시 복구가 겨우 끝났다.
시험 운전으로 엘리베이터를 한 번 올리고, 한 번 내리고, 다시 도어 개폐를 확인했다.
삐걱거리긴 해도 일단은 움직였다.
로비에 모여 있던 사람들 얼굴이 조금 풀렸다.
“아, 된다.”
“이제 좀 살겠네.”
“진작 좀 하지.”
그 말에 나는 웃지도 않았다.
진작.
그 진작이 오늘 저녁을 말하는 건지, 몇 달 전을 말하는 건지, 몇 년 전을 말하는 건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작업일지에 내용을 적었다.
임시 복구 완료. 주요 부품 열화 확인. 재고장 가능성 높음. 교체 권고.
그 문장을 적는 동안 회장이 내 옆에 다시 와서 물었다.
“그럼 견적서는 좀 싸게 해줄 수 있죠?”
나는 펜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필요한건 빼고 싸게 할 수는 없습니다.”
회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돌아섰다.
그걸 보고 있자니 웃긴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승강기가 멈추면 당연히 화를 낸다.
그런데 정작 그 승강기를 계속 돌리기 위해 필요한 돈, 시간, 사람의 하루는 너무 쉽게 깎으려 든다.
나는 공구 가방을 닫았다.
손목은 뻐근했고, 손등엔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휴대폰을 보니 집에서 온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오늘도 늦어?
짧은 문자였다.
나는 한참 보다가 답장을 했다.
응. 거의 끝났어.
거의 끝났다는 말은 대개 거짓말이다.
현장에서는 늘 그렇다.
끝난 줄 알았던 일이 다시 시작되고, 돌아가려던 발걸음이 한 번 더 멈춘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 운전을 한 번 더 확인하려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12층에서 잠깐 턱, 하고 걸렸다.
아주 짧은 진동이었다.
주민들은 못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방금 살아난 척하던 기계가, 다시 한번 속으로 신음하는 소리.
오늘 밤은 아직 안 끝났다.
그리고 이런 밤에는 늘 그렇다.
아무도 기계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기계 앞에 선 사람만 미워한다.
아...
헐 불쌍...
현장 작업자만 욕먹는... 이 너매 세상..